English degree & reading fiction

I went down (what I think of as) the typical path of an “avid” reader starting a university degree in English/American literature.
I read a lot before starting the degree, three or four times the amount of books I am probably going to read this year (=hopefully 50). Once I started studying English (and a bunch of other things), I still read a lot, but 80% of the books were comfort reads: books I have read before, books without complicated narrative structure, fast-paced books, and ultimately books which allowed me to shut out the reality for a couple of hours.
A few semesters into the degree, throw in some massive anxiety show-downs about the future career (now that I had run away from the “secure” law degree), linguistic melt-down due to my omnivorous appetite for learning languages, and a major identity crisis on cultural/linguistic basis, and you have a former reader who doesn’t read much.

In the past 15 months, I’ve read 35 books that were not assigned reading.
In the past three years, I’ve read 23 full-length novels and plays, dozens of short stories, a handful of poems, and countless academic articles for classes (which really isn’t a lot, for three literature degrees combined). Among them, there were famous books, best-selling books, thought-books and problematic ones, but none of them allowed me to sink into their world and just absorb, which was how I used to read.

I suppose my reasons for reading have changed after three years of analytic approach to narratives. I used to read for the immersive experience that let me become somebody else, for the surge of emotions hitherto unknown to me, for the fictitiousness of it all. I used to decide on my favorite books mostly based on feelings: the ones evoking the strongest emotions in me were my favorites. In hindsight, what a romantic approach to reading it was!
Strangely, however, the books from past few years that are lingering the most on my mind are books I had a lukewarm attitude toward while reading, books that were confusing and not exciting, books whose fictitious reality faded away the moment I put them down. Among them I count Come to Me by Amy Bloom, Our Town by Thornton Wilder, Dance of the Happy Shade by Alice Munro, The Love Object by Edna O’Brien, I Know Why a Caged Bird Sings by Maya Angelou and Lost in the City by Edward P. Jones.

Why do we read?

I think it’s an important question a reader should ask themself more often. I’ve been thinking lately that I want to read and re-read good books. Now, “good” is a totally anti-academic description that has no place in a term paper, but my personal requirements for “good” books are that they are written beautifully or extraordinarily (in literal sense), that they do not have a simple message of “this is good, that is bad”, that they teach me new things, and that they linger.

After three years of reading while looking out for narrative techniques, metaphors, character inconsistencies and so on, I have become unable to “simply read”. My reading pace has slowed down considerably and I have stopped accepting the finished book as the god/dess beyond reproach.
I used to resist every step of this change in my reading behavior, and – ironically enough – almost at the end of my university career, I have finally arrived at a place where I can live with this new version of reader and can even think of some perks this might bring into my life.

To be honest, though, this is rather an inevitable legacy of a literature degree and not the most profound discovery I have made in the last three years.
I still believe that I have run away from law degree three years ago. But at the same time, studying Humanities has allowed me the time, room and tools to deal with my anxiety, to get to know my bad habits better, to be wary of everything, to realize how intolerant, stubborn and hypocritical I am, and, most preciously, to recover my Korean roots and to stop running away from the task of digging up past memories and acquiring new knowledge about my and my family’s country.
Since I am such a scaredy cat, I didn’t make full use of everything my university has to offer, but in the past few semesters I was fortunate enough to (re)discover my interest in acting and theater, in translation, in creative writing, in editing texts, in anime, in Japanese, Dutch and Russian.

One more week of the summer semester to push through! (Followed by an intense semester break in which I have to write numerous term papers, again.) I suppose I’ll go read some good books now.



내가 어제 읽기 시작한 책은 비행기에서 읽기 시작해서 단숨에 절반 이상을 집어 삼키고 갑자기 내려놓은 이토 케이카쿠의 「학살기관」이 아니라 현재 의사이자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나츠카와 소스케 (夏川草介, 가명)의 신작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本を守ろうとする猫の話)」다. 책을 좋아하는 고등학생, 곧 폐점 위기에 놓인 고서점, 말을 하는 고양이. 책에 대한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 이보다 더 매력스러운 컨셉이 있을까.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는 개개인의 우리가, 그리고 사회로서의 우리가 책과 독서에 대해 가진 태도를 짚어주고 간다고 볼 수 있다. 책을 아예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자신의 취미로 ‘독서’를 꼽을 만한 사람이라면 뜨끔, 하고 다가오는 구절이 몇 개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아직) 기대했던 것 만큼 많은 감명을 받진 못했다. 이 책이 다루는 문제는 다 다른 데서 접해 보거나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많은 것들이고 린타로가 내린 답들도 그다지 새롭지 않다. 나를 생각하게 만들고 혼란의 바다로 던져놓기에는 너무 안정되었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처음 이 책의 줄거리를 대충 보고 ‘읽기 쉬운 책’일거라고 생각했었다. 무조건 어려운 책이 더 쓸모 있거나 아름답거나 독자를 더 박식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닌 것처럼 읽기 쉬운 책이라고 해서 한번 대충 읽고 처박아 버려도 되는 책만 있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역시 읽기 쉬운 책이다. 시원시원한 문체에 세계관 보다는 분위기를 그려가는 듯한 느낌. 문장 하나 하나 사이에 무언가를 숨겨 놓기 보다는 (제임스 조이스가 생각난다) 독자를 책 안의 세계로 서서히 끌어 당기고 싶은 것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눈에 거슬리는 부분도 몇 개 있다. 주인공 린타로의 동급생 사요의 말투가 시원시원하다는 걸 도대체 몇 번이야 반복해야 만족하는 걸까.

주인공 린타로에 대해서 말해 보자면 그가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고 침착하게 자신만의 답을 찾거나 내릴 때의 모습이 좋다. 아직 고등학생인데 벌써 니체 전집을 읽었다는 게 안 믿기지만 (대학생이 돼서도 아직 니체를 한 권도 안 읽어본 사람으로서 할 말이 없다 – 심지어 원어로 읽을 수 있으면서도!) 자기 주장을 또렷이 할 수 있는 모습은 더 신기하다. 한동안 나에게는 내가 읽은 책에 대한 나의 의견을 내놓지 못 할 때가 있었다. 내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아직 희끄무레 했을 때,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내 자아가 더 희미해 지는 것 같았을 때, 나는 책을 읽고 나서도 내가 그 책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스스로도 몰랐었다. 그건 타인이 내 의견을 비웃을 까봐, 나 조차 확신이 안 가는 생각이었으니까 뭐 자신 있게 내놓을 만한 말이 없었다.

미국에서 지난 일년에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어른이 1000명 중 20%나 된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재 시대에 각자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독서와 연관되는 장점은 수두룩하지만 운동도 마찬가진데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운동을 안하는 어른은 20%가 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 4년간 운동과 담을 쌓고 지냈던 사람으로서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해보니까 좋더라.). 한창 독서에 빠져있던 고등학교 땐 1년에 200권 씩 읽기도 했었고, 그렇게 읽은 책들은 ‘쉽게 읽을 수 있는’책이었다. 지금 와서 다시 읽겠냐고 묻는다면 사양할 만한 청소년문학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때는 나름대로 도움이 됐었던 책들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어휘를 많이 늘린 것도 사실이고. 만약 진짜 ‘쓸모 없는’ 책 종류를 꼽으라고 하면 99.99%의 로맨스 소설이랄까나. 현실성도 신빙성도 떨어지고 오히려 독자한테 ‘사랑’에 관한 불건강한 망상만 심어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건 한때 내가 꽤 많이 읽었던 장르라서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잘 팔리는 이유 또한 불안하고 힘들 때 많은 현실과는 많이 다른 세상을 보여주기 때문인 것 아닌가 싶다.

인간은 때때로 (?)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접하는 것 – 책, 영화, 노래, 광고, 수업, 등등 – 을 받아들이고 흡수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골라가며 살 필요가 있다. 일종의 건강한 식단을 따라 밥을 먹는 것이 쌓이면 몸에 더 좋은 것 처럼. 물론 종종 케이크의 유혹에 넘어간다 하더라도.

18.03.29 B.

P.S.: 다 읽었다! 뭐랄까, 마지막에 한 방 먹은 느낌이다. 이 책은 책한테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지도, 지나치게 이상적인 말만 늘어 놓지도, 결론적으로 애매모호한 메세지를 던져 놓지도 않는다. 책과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느낌. 책을 사랑하면서도 도구로서 사용할 수도 있다는 느낌. 한가지 아이러니한건 이 책도 현재 베스트셀러인데다가 쉽게 읽힌다는 점일까나.

독서감상: 고두 (叩頭)

2017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대상 수상작품, 임현 작가의 ‘고두 (叩頭)’를 읽었다. 영문권에서 나온 단편에 익숙해진 나한테는 아주 생소롭게 서술자가 마치 독자한테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한테 이야기를 하는 듯한 문체로 서술되는 단편이었다. 한국어에선 첫문장부터 그런 식의 문체가 들어난다는 점을 참 좋아한다. 읽으면서 여러번 ‘아, 이 문장은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단편은 호불호가 좀 더 명확하게 갈리는 장르같다. 그리고 예를 들면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고 해서 출판되는 판타지 소설을 몽땅 다 읽는 것도 아닌 것처럼 단편애호가라고 해서 접하는 단편소설마다 감동에 빠지거나 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단편은 중편이나 장편소설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내에 독자를 사로잡아야하기 때문에 도입부부터 지루하면 강한 인상을 남기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고두 (叩頭)’는 처음부터 내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도입부에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길레 또 부자지간의 갈등에 대한 이야긴가 했는데 오히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갔고, 딱히 내용보다는 서술형, 그리고 서술자의 (직업이 선생님이다) 인간사상과 전혀 미안해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사죄받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이 모순적으로 뒤엉켜 읽으면 읽을수록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고 결과적으로는 이 단편 전체가 서술자의 인간사상의 교과서적인 예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서술자의 인간사상은 대충 이렇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다, 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데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자기 시선이 기울어진 건 인정하려고도 안한다, 자기는 늘 옳다고 생각하면서 남을 다그친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사죄하는 것도, 이 세상의 불공평함에 열을 내는 것도 실은 다 자기 기분 좋으라고 하는 거면서 자신은 정의의 수호천사라도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한다. 그러니까 이런 점들을 윤리적인 삶에서 제일 경계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이 사상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문제는 여기서 체념하고 그냥 마음대로 살 것 인가, 아니면 이 딜레마 앞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으려 노력할 것 인가, 타협을 할 것인가, 자책을 할 것인가, 즉 이 문제에 대한 태도를 정하는 것 아닌가 싶다.
나에게 있어 ‘고두 (叩頭)’의 매력은 서술자가 자신도 인간이다, 그러므로 이기적이다,라는 변호를 들이대며 하는 행동이 결국은 자기가 윤리선생으로서 경계하라고 했던 그 짓을 그대로 하는 것이다. 서술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원하는 건 자신이 홀가분해지기 위해 용서를 비는 거 였으니까. ‘고두 (叩頭)’를 통해 임현 작가가 인간의 이러한 모순적인 가치관을, 사상과 실행이 늘 따로 노는 우리 인간들의 심리를 훈계적보다는 옆에서 자그시 꼬집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점 두가지만 더. 이 단편에 나오는 이름은 딱 하나 밖에 없다. 연주. 이 이야기의 또다른 주인공이라 하기엔 그녀의 삶과 성격이 얼마나 서술자에 의해서 뒤틀어졌는지 알 수 없는 등장인물. 어째서 연주만 이름을 갖고 있는 걸까. 그리고 보아하니 연주는 이름이지 성이 없는데 왜 이 단편에서 유일하게 성이 알려진 사람이 서술자일까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동료가 ‘김 선생’이라고 하는 것만 알려져 있으니까.). 두 사람이 얽혀서 생긴 이야기니까? 그러기엔 비중분배가 잘못되지 않았나?
마지막으로 한 번 짚어가고 싶은 것은 이 단편의 제목. ‘고두 (叩頭)’는 물론 서술자가 가르쳤던 ‘사죄포즈’. 연주가 자신의 가르침을 너무 훌륭하게 연기하는 바람에 자신의 삶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고 서술자는 이야기한다. 겉으로 보기엔 나무랄데 없는 경례의 표시. 그렇지만 인간이 하는 행동이 다 그렇 듯 겉과 속은 자주 따로 논다. 21세기에서는 오히려 그 과장된 면이 속으로 상대방을 놀리고 있는 거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고두 (叩頭)’는 격식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는 것 같은 서술체와 대조가 되기도 한다.

Languages are dangerous

We can’t live without them.

They are so incomplete, so imperfect, but they are the only tool we have to express even a fraction of what we desire to share with others.

Word vomit.

It’s funny, that. We cough, hack up and spew mountains of sounds that are somehow supposed to make sense.

Think about it. I dare you to suppress your howl of frustration.

Language games, Lyotard said. Yes, with our sanity on stake.

You forget, you slip, whooshing toward the unknown, and if there is no net of words to catch you, you continue to fall until you don’t even notice it anymore.

I am greedy. I could cling on to the sturdiest rope, building on it and repairing it, but I am greedy. I hop and panic between several strands, unwilling to let go of any.

There is no answer. It’s a slow walk to madness, anyway. There is only one thing that does not belong in this journey, and that’s fear. Fear, Angst, 두려움, 恐れ, страх, vrees, peur.

Decide to leave them behind.
버려라. 그딴 거 필요 없어.


예전에 나는 독서 하는 게 아주 간단했다. 그냥 집에 있는 책 중 한 권을 책장에서 끄집어내 읽기 시작하면 다였다. 초반부에 몰입이 잘 되지 않아도 집중해서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만약 정 몰입이 안 되면 읽고 있던 책을 다시 덮어 버리면 끝이었다.

어쩌면 나의 독서생활이 그렇게 순조로웠던 것에는 내가 그 당시에 읽던 책이 그만큼 소와하기 쉬운 책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무렵에는 솔직히 내키는 책만 읽었고 (솔직히 이건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 영어를 늘린다는 핑계아래 몇 시간 안에 해치울 수 있는 청소년 소설을 주로 즐겨 읽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는 이야기에 굶주려 있었고, 서양 (특히 미국) 문화에 큰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

심지어 대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로도 나의 독서양은 줄지 않았고, 오히려 소설을 현실도피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 없는 ‘representation’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고, 현신을 잊기 위해서 읽던 소설 속에서 나 자신을 찾으려고 하다가 나와 비슷한 사람은 주인공은커녕 조연급으로도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갑자기 흥미가 뚝 떨어져 버렸다. 갑자기 책을 읽으면서 내용을 습득하기보다는 그 책의 문제점 먼저 집어내게 되었다. 옛날부터 책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다는 게 무척 좋았었는데, 자꾸 밖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공감의 문이 닫혀버리면서 독서를 해도 도무지 즐겁지 않았다. 책을 읽기도 전에 작가의 출신지, 성별, 성적 정체성을 분석하고 있었고, 이 책이 과연 고전 혹은 현대문학 중에서 클래식에 속하는지 따지고 있었으며 책을 읽으면서도 캐릭터가 혹은 서술자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politically correct, PC) 묘사를 하고 있는지 더 큰 신경을 썼다.

그렇게 특히 영문학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삐걱거리던 나의 독서생활은 올해 3월쯤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워낙 독일에서 유학하기 시작한 뒤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던 정체성이 급커브를 돌면서 내 뇌가 한동안 영어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참 영문학도로서 여간 낭패가 아니다. 하지만 한창 사춘기 때 한국어가 그토록 싫었던 것처럼 갑자기 영어, 독일어에 거부 반응이 걸리면서 한 두 달 동안은 아무 독서도 하지 않게 되었다. 옛날에 매달 스무 권 넘게 책을 읽던 걸 생각하면 참 놀라운 진전이다. 솔직히 지난 3달 동안 읽은 책 12권 중 7권은 전공 혹은 부전공 과목을 위해 읽은 것이고, 나머지 다섯 권중 두 권은 한국어로 된 소설이었다 (에쿠니 카오리, 한강).

아직도 독서는 힘겹다. 별 생각 없이 술술 읽어 내려가는 독서 방법으로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러기에는 소설 자체에 떨쳐버릴 수 없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기에. 그렇지만 앞으로도 천천히, 가끔은 고통스럽게 책을 읽어가게 될 것 같다. 자신이 발견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끊임없이 그 무언가를 찾아가며. 그렇지만 기분전환으로서는 아직(?) 너무 버거운 과제이기 때문에 현실 도피로는 만화와 아니메의 힘을 빌려야겠다.

Dit en dat (practice)

Ik ben al bijna twee jaar begonnen het Nederlands te studeren. Omdat ik al Duits konde spreken toen ik met mijn studie begon, was het makkelijker voor mij de Nederlandse taal op te nemen. Maar ik moet ook bekennen dat het niet makkelijk is “in het Nederlands te denken”. Wat ik daarmee wil zeggen is dat ik vaak in mijn hoofd een zin van Duits naar Nederlands vertaal, juist omdat de twee talen overeenkomstige zinstructuur, woordenschat enz. hebben. Bovendien is mijn hoofd toch al vol gevullt met talen en soms moet ik een woord meer dan een keer vertalen om op de juiste taal te komen, zoals Koreaans -> Engels -> Duits -> Nederlands.

De Nederlandse taal- en literatuurwetenschap is mijn bijvaak en dat betekent dat ik er niet zo veel cursussen voor heb. Dus – en dat weet ik ook – is het waarschijnlijk dat ik de taal snel zal vergeten als ik er niets tegen doe. Deze blogpost, zo kun je denken, is mijn poging me meer ermee bezig te houden. Deze semester heb ik alleen één literatuurwetenschapcursus waarvoor we vier Nederlandse gedichten en twee Nederlandse boeken lezen. Ik ben nu aan het lezen van een van de twee boeken, Oeroeg van Hella S. Haasse, en ik vind het een beetje moeilijk te lezen omdat het boek geen kapitteltjes en weinig (of helemaal geen) dialogen heeft. Maar het meest problematische aan deze verhaal (zo ver) zijn de stereotypen van Oeroeg en zijn familie, die Indonesiërs zijn (anders dan de verteller die een Nederlander is). Ik reageer een beetje (?!) geprikkeld als het over “othering” gaat en om eerlijk te zijn heb ik genoeg van de stereotypische beschrijving en karakterisering van niet witte personages, vooral in de literatuur over de voormalig gekolonialiseerde landen.

Wilted Yellow Rose (creative translation)

Note: Original in Korean

Hibiscus has bloomed *
Expectation, a silent, crunching step,
slides down my spine
As I shudder at its moist fingertips,
with a whisper it enters my mind

Flowers droop, whirling, squashed shadow
A crumpled piece of paper left behind in the ribcage
A hole in the Hanji ** by the wet tongue
bruise, slithering through, paralysing the whole body

Softly licking the frozen lumps of blood
and placing a kiss on the subsiding wound
I pour another cup of flower alcohol
and seek sleep in the eye of the vortex


* Hibiscus syriacus is the precise translation of the Korean national flower, 무궁화. “Hibiscus has bloomed” is the name of a game for children in which one person turns their back on the other players, and while covering the eyes, that person chants out loud “Hibiscus has bloomed”. During that time, the other players can advance from the starting line. Once the chanter finishes the sing-song sentence and turns their head, everyone must freeze. The goal is to get near to the chanter and to tap that person’s back while it is turned.

** Hanji is a traditional type of paper from Korea, which has been produced and used for close to 2000 years. Among other things, it also used to be applied to the frames of doors and windows, because Hanji offered a good protection against the wind. However, because it was made of paper, a bit of wetness could easily tear through it.

시든 노란 장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어느새 사각사각 다가와
척추를 타고 흘러내리는 기대
차가운 손끝에 움찔하는 순간
속삭이듯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

꽃이 지고 팔랑팔랑 짓밟힌 그림자
흉곽안에 남은 구겨진 종이 한 장
축축한 혀가 뚫고 간 한지 사이로
남겨진 멍자국이 온 몸을 마비시켜

얼어붙은 핏덩어리를 할짝할짝 삼켜서
사그라드는 흉터에 입을 맞추고
꽃술을 한 잔 더 따라
소용돌이의 눈 안에서 잠을 청하네

We are brittle, ashamed, and human

When you live in solitude long enough, there comes a time when you recognize who you truly are. “True”, in the sense “unobscured by others”.

I am not used to taking care of myself. I have more to do since I have to do everything. I am lonely.

In the beginning you could use the solitude as an excuse. But one day you will realize… this is who you are when you are on your own. When everyone has been hidden away from you. When you don’t have anyone to rely on to give you a role, a script, a mask. When you are left alone, vulnerable.

This is who you truly are.

Without any imput from the outside, you become both numb and overly sensitized. With the hard shell holding everything together stripped away, inside the crumbling mess you find pieces of yourself you had hidden away so that no one can see it. Weaknesses. Embarrassment. Shame. Disgust. Surrender and hopelessness.

Fall apart.
So easily… fallen apart.

No one can know. Because if they knew, and they rejected you, you couldn’t live with the pain. Because if they knew, and they embraced you, you will fall apart into pieces. Even now, you are waiting for someone to pick you up and tell you that they love you the way you are. Even now, when you have hidden yourself away from everyone.

Hide. Don’t hide.
Give up. Don’t give up.

Empty. A corpse is so empty and so cold. A lifeless thing. No pain, no pleasure. Give the knife in your pocket a reassuring pat and gather up. Go on living… because life is whatever you think it is. Find comfort in life, in death – wherever you can, however you can. According to your own compass that you build and take apart, build and take apart…

Alone… Together.

What it means to write poetry

*Translation below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심장 박자 안에서 존제하는 그 느낌을, 혹은 그 이미지를, 그 기분을 자아낼 수 있는 그 하나의 단어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 허우적거림 속에서는 수십개의 표현이 손가락 끝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그중 자신이 찾는 그 하나의 단어를 위해 끝없이 손을 뻗어나가는 그 동작이 마치 시인의 춤 같다.

Writing poetry is like searching for that one word that exists in that feeling, image or mood inside your head, mind or heart. This frantic movement towards that one expression that eludes you as dozens of words slip by your fingertips – this neverending stretch of arms is like the poet’s d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