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예전에 나는 독서 하는 게 아주 간단했다. 그냥 집에 있는 책 중 한 권을 책장에서 끄집어내 읽기 시작하면 다였다. 초반부에 몰입이 잘 되지 않아도 집중해서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만약 정 몰입이 안 되면 읽고 있던 책을 다시 덮어 버리면 끝이었다.

어쩌면 나의 독서생활이 그렇게 순조로웠던 것에는 내가 그 당시에 읽던 책이 그만큼 소와하기 쉬운 책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무렵에는 솔직히 내키는 책만 읽었고 (솔직히 이건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 영어를 늘린다는 핑계아래 몇 시간 안에 해치울 수 있는 청소년 소설을 주로 즐겨 읽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는 이야기에 굶주려 있었고, 서양 (특히 미국) 문화에 큰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

심지어 대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로도 나의 독서양은 줄지 않았고, 오히려 소설을 현실도피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 없는 ‘representation’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고, 현신을 잊기 위해서 읽던 소설 속에서 나 자신을 찾으려고 하다가 나와 비슷한 사람은 주인공은커녕 조연급으로도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갑자기 흥미가 뚝 떨어져 버렸다. 갑자기 책을 읽으면서 내용을 습득하기보다는 그 책의 문제점 먼저 집어내게 되었다. 옛날부터 책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다는 게 무척 좋았었는데, 자꾸 밖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공감의 문이 닫혀버리면서 독서를 해도 도무지 즐겁지 않았다. 책을 읽기도 전에 작가의 출신지, 성별, 성적 정체성을 분석하고 있었고, 이 책이 과연 고전 혹은 현대문학 중에서 클래식에 속하는지 따지고 있었으며 책을 읽으면서도 캐릭터가 혹은 서술자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politically correct, PC) 묘사를 하고 있는지 더 큰 신경을 썼다.

그렇게 특히 영문학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삐걱거리던 나의 독서생활은 올해 3월쯤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워낙 독일에서 유학하기 시작한 뒤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던 정체성이 급커브를 돌면서 내 뇌가 한동안 영어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참 영문학도로서 여간 낭패가 아니다. 하지만 한창 사춘기 때 한국어가 그토록 싫었던 것처럼 갑자기 영어, 독일어에 거부 반응이 걸리면서 한 두 달 동안은 아무 독서도 하지 않게 되었다. 옛날에 매달 스무 권 넘게 책을 읽던 걸 생각하면 참 놀라운 진전이다. 솔직히 지난 3달 동안 읽은 책 12권 중 7권은 전공 혹은 부전공 과목을 위해 읽은 것이고, 나머지 다섯 권중 두 권은 한국어로 된 소설이었다 (에쿠니 카오리, 한강).

아직도 독서는 힘겹다. 별 생각 없이 술술 읽어 내려가는 독서 방법으로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러기에는 소설 자체에 떨쳐버릴 수 없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기에. 그렇지만 앞으로도 천천히, 가끔은 고통스럽게 책을 읽어가게 될 것 같다. 자신이 발견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끊임없이 그 무언가를 찾아가며. 그렇지만 기분전환으로서는 아직(?) 너무 버거운 과제이기 때문에 현실 도피로는 만화와 아니메의 힘을 빌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