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

에쿠니 가오리(江國 香織) 의 책을 읽으면 과연 이 작가 책을 서양 언어로 번역 했을 때 잘 팔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지금 읽고 있는 책 (장미 비파 레몬 薔薇の木 枇杷の木 檸檬の木), 딱히 줄거리라고 할 수 있는 건 없고 오히려 십여명의 등장인물의 성격과 라이프스타일을 천천히 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영국이나 미국 시장에도 (다른 나라는 잘 몰라서 뭐라고 말을 못 하겠다) 그런식의 소설 – ‘literary fiction’ – 이 있지만 에쿠니 가오리의 ‘장미 비파 레몬’과는 달리 집중과 끈기를 요구한다.

역시 동양에서 자란 사람이라 어쩔 수 없는걸까.

아니면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캐릭터의 속 깊이 안 들어가는걸까? 그렇지만 또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물론 지금 동양국가에 사는 게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주인공들을 보면 2000년대 한국 사회에 (16년 만에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충분히 있을만한 사람들이라고 생각이 된다. 정은 있되 사랑 없는 부부생활과 어느 나라던 존제하는 짝사랑과 불륜, 아주 독립적인 여자와 연상의 보호와 애정을 바라는 여자까지, 실제로의 삶은 책이 그려낸 것 보다 물론 더 복잡하겠지만 (특히 시집 갈등이 없는 게 신기하다 – 일본은 좀 다른 문화인가?).

그런걸 다 떠나서 나는 책에서 우려나오는 그 편안함이 좋다. 영어의 ‘cozy’라는 표현에 그나마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은 그 포근함은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존제하지 않기 때문에 더 좋은 것 이다. 나는 성격이 워낙 전전긍긍하는 성격이라서 그런지, 혼자 할 일 없이 한 오후를 보내라고 하면 오히려 스트레스만 만땅 받을 사람이다. 오후에 개와 산책을 하면서 가끔 꽃을 사서 들어가는 도우코나 이혼할 생각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꽃집을 운영하고 남편을 위해 요리하는 에미코의 삶은 내 불확신하고 1년 앞이 안 보이는 삶에 비해 더 안정적이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위안의 환상을 안겨준다.

도우코나 에미코 같은 사람들도 자기만의 전투가 분명히 있을텐데, 괴로워하고 절망하는 면이 있을 텐데, ‘장미 비파 레몬’에서 에쿠니 가오리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적어도 아직 까지는 – 아직 다 읽지 않았으니까). 나는 나의 삶의 절반 이상을 그렇게 나 나름대로 힘들어 하면서 보냈기 때문에 (솔직히 요즘 시대에 그렇게 안 사는 사람이 어딨나) 내가 만약 글을 쓴다면 그런 모습을 담고 싶지만, 가끔은 이렇게 편안한 책을 읽으면서 영혼을 쉬게 해주고 싶다. 그렇지만 진정한 평화는 도피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는 것 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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